□ Otterbein의 Juanita를 방문하다 !  

     

본래는 이번 여행은 댈러스에 사는 재홍이네 식구도  만날 겸 아내와 함께 미국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기홍이가 비행기 스케줄도 짜고 이왕에 미국에 갔으니까 기분전환으로 캐나다 쪽으로 여행도 한번 해보는 계획까지 잡아놓았다. 이제까지 살아가면서 관광여행 한번 가본 일이 없음으로 죽기 전에 이번에 여행한번 가보자고 해서 비행기 티켓도 다 구입해 놓았었다. 그런데 아내 건강상태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여행자와 함께 행동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병원 의사가 이번 여행은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게 됨으로 아내의 비행티겠을 반환하고 여행일정도 업무수행목적만을 위하는 스케줄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WTC 컨퍼런스에 참가하여 논문발표를 하고 나면 바로 Lima에 가서 Juanita를 방문하고 다시 댈러스에 와서 재홍이내 집에서 며칠 쉬었다가 귀국하는 스케줄로 짷여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8일 동안에 미국 내에서  네 개의 적은 도시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스케줄이 빡빡하게 짷여지게 되었다. 이는 Lima에 있는 Stephen Shaw가 안내해 주는 스케줄을 따라 짷여지게 되었다. 이미 Stephen 판사와 연락해서 어머님 건강상태가 어떠하며 부인 Corte가 주말에는 집에 있게 되는 주말을 활용하는 여행계획이 되었다.



   옆에 동행자가 있으면 도움이 되지만 나 혼자서 오랜만에 여행하게 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형편이다. 비행기를 짧은 시간에 여러 번 타야하며 시차계념이 없는 형편에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도시바다 표준시간이 달라진다. Oct 17일 인천에서 Chicago에 도착해서 짐을 찾아다시 부치고 CMI Champaign 가는 비행기 03:15 PM를 타야 하는데 내 시계를 보니 3:30분이 지났다.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다가 공항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1시간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도시마다 표준시간이 다르니 내시계보다 남의 시계를 보고 확인할 심산으로 시계를 건드리지 않고 시각은 안 보고 시간만 보기로 했다. 그러나 Champaign 호텔에서는 자명종 시계와 핸드폰 시간만 Chicago 시각에 맞추어 사용하다가 Lima에서 Dallas로 왔다가 귀국했다.


Oct 21 아침 10:5 분에 호텔에서 ORD Champaign 공항에 나를 차로 데려다 주었다. 이제  Lima 여행이 시작되었다. Baggage 2개를 붙이는데 신용카드나 첵크카드로는 안 되고 현금으로 60$를 지불했다. Chicago에서 짐을 바로 Wayne로 옮겨 싣는 가격인지 여하튼 짐을 부치고 안전심사를 하고 01:25 PM에 비행기에 탑승하니 마침 창문옆자리이었다. 날씨가 화창하고 Champaign에서 Chicago 가는 한 시간 동안 광활한 일리노이스 평야와 도시들을 핸드폰 카메라로 스냅하면서 왔다. 이제 오후 04:50 pm FWA Fort Wayne 에 가는 American Eagle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비행기가 고장 나서 45분 출발시간이 연장되고 또 다른 비행기로 가야한다. 비행기가 지연되었다고 Stephen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비행기는 한 시간 지연되어 7:30 PM에 도착했다. 안전수속을 마치고 baggage room에 도착하니 Stephen이 알아보고 손짓을 하였다, 우리는 반가움에 서로 부둥켜 않고 5년 만에 재회의 감회를 나누었다. Stephen은 나를 도와 짐을 찾아 나를 차에 실고 Lima를 향해 달리었다. 짐을 찾아 공항을 출발할 때는 밤 8시가 넘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달려 Lima의 법원거리에 도착하였다.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부인 Corte와  Loush 부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5년 만에 미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모두들 부둥켜 않고 형제와 같은 감정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어른 거렸다. 마침 Loush도 올 여름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에 우리 세 가족은 어머니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는 기분이었다. 와인으로 서로의 만남을 축하하고 저녁식사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스토랑이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 져서 우리는 일어나게 되었다. Loush 부부와는 작별하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Wingate 호텔로 나를 대려다 주었다. Stephen 부부가 방에까지 들어왔다. 내일 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까 이왕에 방에 들어왔기 때문에 준비한 선물과 봉투를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가방속 깊숙이 넣어준 봉투와 CD를 꺼내고 엊그제 WTC 행사장에서 산 여자용 셔스를 Stephen에게 건네주었다.


미국에 가서 주아니타 여사한테 인사하러 간다고 하니까 빈손으로 갈 수 없으니 나 보고 적당히 선물을 사던지 그냥 현금으로 주든지 하라면서 내 여비와 함께 금일봉을 마침 9월 21일 행사 끝난 후에 김낙환 목사님이 자기 방에 오라고 하더니 주셨다. 또 그 이야기를 김 목사가 전 목사한테 이야기 하는 바람에 전석법 목사님도 여비와 함께 쓰라고 봉투를 주었는데 Juanita 여사가 건강한 상태도 아님으로 차라리 현금을 좀 아드님한테 드리는 것이 낳겠다 싶어 우리 가족도 보태서 US$750를 봉투에 넣고 주아니타여사의 건강을 기원하는 한국 가족들의 리스트와 함께 동봉했다. 그리고 섭섭하여 내가 WCT행사장에 구매한 여자용 셔스 세벌을 준비해서 가져왔는데 이는 세여자들, 주아니타, Corte, Losch 부인 것으로 사왔다고 했다. 또 9월 21일 서울 평화공원에서 행사한 것을 최종식 회장이 나한테 보내준 행사사진 CD를 차라리 Shaw 가족에게 주고 오는 것이 낫겠다고 해서 그 CD도 함께 가지고 왔다. Stephen은 다른 선물은 받겠지만 돈은 안 받는다고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그래서 이것은 한국의 친구들이 꼭 전해주고 오라고 했으니 내가 도로 가져갈 수 없다고 말하면서 품에 넣어주고 말았다. 그럭 저럭하다보니 늦은 밤이 되었다. Stephen 부부가 떠나면서 내일 아침 9:00시에 나를 데리러 온다고 하면서 호텔을 떠났다. 결국 Lima에 도착하게 되었으며 스티븐  부부와 러쉬 부부를 만나고 내일은 스티븐이 어머니한테 데려다 준다고 하고 갔으니 일단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모처럼 목욕을 하고 잠을 청했다.   

                                                              Oct 21, 2016, Lima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신선한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었다. 나는 404호실이라 창문을 열어보니 길 건너 건물이 아침햇살을 받고 있어 스냅을 한 장 했다. 그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 모르지만 내가 투숙한 Wingate 호텔은 Lima의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값비싼 호텔인 것으로 알려졌다. Lima city는 미국 Ohio 주  Allen Country의 군청소재지 도시이다. Stephen Shaw의 지방법원이 있는 행정도시다. 현관에 쪽지가 있어 주어봤더니 청구서 놓여있는데 $145 정도된 것 같다. 저녁에 재홍이와 전화한 것 밖에 없었는데 어제 아침에 떠나온 Champaign의 Hawthorn 호텔에서는 4일간 머무는데 $452.46 인 것에 비하면 조금 비싼 생각이 들었다. 짐을 챙겨놓고 기다리는데 스티븐 판사는 9시 정각에 올라와서 나가자고 한다. 첵크아웃도 스스로 하는 데 나는 보고만 있었다. 원칙으로는 내가 첵크아웃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야 했지 않느냐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되었다. 낮선 도시에 처음 온 입장이라 사리판단이 안 되는 상황이라 좀 뻔뻔스러운 결과가 되어버렷다. 스티븐은 나를 데리고 바로 길 건너 있는 자기가 근무하는 Lima 법정을 한번 둘러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에 이 근방에 꽃집이 있으면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해서 어머님이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이니 꽃이라도 드리면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아서 좀 사가지고 갈려고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스티븐은 그렇다면  Corte한테 연락하면 된다고 했다. Corte가 잘 아는 꽃집에 연락해 놓으면 된다고 하고 Corte한테 전화를 하여 부탁을 하는 것 같다.


바로 우리는 법원으로 가서 스티븐 판사 집무실로 올라갔다. 집무실은 어느 사무실과 다름이 없었다. 작년에 보훈처에서 보내진 W. Hamilton Shaw 전쟁영웅 사진액자와 1900년대의 서울 거리의 사진을 보여주고 또 보훈처 행사 때 중 고등학생 상대로 전쟁영웅 글짓기를 영어로 실시했는데 학생들이 Shaw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담겨진 상자도 보여주었다. 나도 학생들이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서 한 번 살펴보고 스냅도 했다. 어떤 학생들이 참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봉투에 적힌 이름들을 살펴보니 부산시내 중고등학생들이 쓴 글 들이었다. 부산 덕문여고 김혜민, 해연중 장지혜, 덕문여고 신효정, 부산서중 임경태 등의 이름들이었다. 한번 살펴보기 위해서 임경태 군의 글을 하나 스냅 했다. 주최 측으로부터 W. H. Shaw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 듣고 나서 느낌을 나름대로 영문으로 쓴 것들이었다. 중학교 3학년생인 임경태군은 ‘In fact, I didn’t have any interest in the history of Korea. However, I was motivated to be more interested in our history thanks to your story.‘ 와 같이 쓰고 있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국사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임 군은 국사에 대해서 평소 흥미를 갖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생각으로는 국사는 국민된 도리로 배우는 것이지 취미로 배우는 것이 아닐진데 임군이 이렇게 쓴 것을 보니 요지음 국사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우리가 학교 다닐때와는 상당한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무실을 나와 법정과 소속 판사들의 집무실과 자료실들을 두루 살펴보게 하였다. 법정에서는  Judge Shaw 대리석 명패가 큼직막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내가 스냅 하니까 스티븐 판사가 옆에와 포즈를 취해 주었다. 밖에 나와서  법원건물을 스냅할때도 포즈를 취해주었다. 마침 토요일 휴일이라 자유스럽게 법원구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평생 동안 법정에 들어가 본 일이 없었는데 다른 나라의 법정을 자세히 돌아보는 경험을 했다. 법원에서 나와 Juanita가 있는 Cridersville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Lima 거리를 지나고 마을을 지나면서 스티븐이 Losch가 근무하는 회사를 지나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Lima의 전원풍경을 스냅하면서 지나왔다. 어떤 화원 집에 들러 Corte가 주문해 놓은 꽃병을 찾아가기로 했다.  여러 가지 꽃을 꽃병에 화려하게 꾸민 화병을 꽃집 주인여인이 내 놓는다. 스티븐 판사가 꽃값을 지불하려고 하기에 이는 반드시 내 이름으로 어머니한테 꼭 드리고 싶다고 우기면서 내가 미리 준비한 지폐로 지불했다. 이 꽃병을 다시 앞자리에 싣고 다시 출발해 음식점에 들러 점심을 일단해결하고 나서 Cridersville로 다시 출발했다.


다시 차를 몰고 Cridersville에 가면서 스티븐은 자기 고향마을이라 여기는 어디고 여기는 어디라고 설명하면서 Corte가 근무하는 유치원도 지나고 드디어 Cridersville에 있는 Otterbein 단지에 도착했다. 단지에 들어서면서 간판을 보니 ‘Senior Lifestyle Choice’라고 쓰여 있다. 밑에는 ‘United Methodist Related’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아 조금 전에 Unites Methodist Church 건물을 지나온 것으로 보아 이 요양단지도 교회에서 후원하는 기관임을 짐작 할 수 있다. 내가 직접 꽃병을 않고 현관에 들어서니 주아니타 여자는 휠체어에 앉고 Corte와 함께 현관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가서 꽃을 내려놓고 나는 여사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쁘다고 말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땡이다라는 생각이 얼른 들었다. 서투른 영어실력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문득 설날에 손자들이 나한테 세배했던 생각이 나서 주아니타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나는 신발을 벗고 카펫 바닥에서 주아니타한테 큰 절을 올렸다. 주아니타와 스티븐도 한국에서 절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임으로 내가 큰 절을 올리려는 것을 말리지는 안했다. 자식들이 먼데 갔다 돌아오거나 어른들에게 인사할 때는 큰 절하는 것이 우리의 예법 아닌가? 주아니타도 앉아 절을 받았다. 절을 하고나니 나도 마음이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이 나이에 누구한테 큰 절을 올릴 기회가 얼마나 또 있겠는가? 언제 내가 또 Lima에 올수 있으며 주아니타 여사도 얼마나 더 오래 살아계실지 모르는 형편 아닌가?  年旣耆艾 雖欲悌 誰爲悌(이미 나이가 들어 머리가 하얗게 되었는데 누구를 공경하겠는가)안 했던가? 君子 思其不可復者 而先施焉(군자는 반복해서 할 수 없는일을 먼저 해라!) 안했던가?  어려운 여행 끝에 나 혼자일망정 이곳까지 왔으니 큰 절이라도 올리고 가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으로는 나 혼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러분이 찾아와서 인사드렸으면 좋았을 것인데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제서가 아니라 진즉 찾아와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했어야 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편리한때에 행사 때마다 병고에 시달리는 연로한 미망인에게 초청장만 보낼 것이 아니라 예의를 갖추고 일부러 찾아와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어야 옳았었지 않느냐 생각하게 된다. 나 혼자 비록 초라하게 찾아와서 인사드리고 가지만 남편을 잃고 한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주아니타 여사를 직접 찾아와서 인사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닷새 후 10월 27일이 주아니타 여사의 95세 생일을 맞았는데 내가 보내준 꽃들이 그 때까지 싱싱하게 피어있어서 그녀의 좋은 생일 축하선물이 되었다고 스티븐 판사가 메일을 보내왔다.



주아니타는 재홍이도 잘 있느냐고도 물었다. 어제 컨퍼런스에 찼던 명패를 나보고 다시 한 번 차보라고 해서 내가 다시 차고 주아니타 앞에서 스냅도 하였다. 주아니타는 1960년대 서울외국인 교사로 봉사하고 이대 사회학과 교수로도 봉사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주아니타가 큰 아들 빌과 스티븐이 자전거로 연대캠퍼스를 타고 다녔던 이야기도 하였다. 주아니타의 발음을 내가 잘 알아듣지 못 하는 듯 하면 스티븐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보충설명을 했다. 나도 연대 캠퍼스를 8년이나 들락날락했으니 그 이야기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랬더니 Corte가 나보고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한 바탕 모두들 웃어버렸다. Corte가 나를 치켜세우려는 뜻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셋은 동시에 웃고 말았다. 그러면서 Corte는 방에서 잠꾸러기를 펼쳐 보이면서 우리 집사람이 함께 오지 못했으니 아내에게 전해달라는 핸드백이며 나무로 만든 성경파넬이며 주아니타 고향 등대 목판과 도서 2권 등을 싸놓았다가 펼쳐 보이면서 이걸 가져가야한다고 설명해주엇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한 시간여 정도 흘렀다. 주아니타 여사도 너무 피곤하면 안 되고 나는 04:05 PM 출발하는 FAT Fort Wayne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한다. 공항까지 가는데 에는 한 시간여 가야하기 때문에 이제 인사를 하고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스티븐이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관에 나와 주아니타 여사와 함께 스냅을 하고 다음에 또 방문해서 인사드리러 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인사를 하고 Otterbein 단지를 떠나 공항을 향해 스티븐이 차를 몰았다.


Ohio Lima를 출발하여 인디아나 주의 Fort Wayne로 오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스티븐은 자기 형님 젊었을 때의 음악콩굴에서 연주한 것이라면서 CD를 또 챙겨 나한테 건네주었다. 스티븐 차 넘버가 PT-518이라 내가 기념으로 차 넘버를 스냅 하였다. 스티븐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PT-518은 W. H. Shaw가 1944-46년 해군에 복무하면서 북유럽해협에서 조함했던 소함정 이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일부러 차 번호를 그렇게 부여받은 모양이다. 다른 사람은 건성으로 볼 수 있지만 내 눈에는 금방 그 차넘버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Chicago에서와는 달리 스티븐이 인도하는 데로 짐을 붙이고 보안검사를 하게 되어 한결 수월하게 탑승수속을 마치고 탑승 30분전에 탑승 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스티븐은 입장티켔을 사서 탑승 장까지 들어와서 내가 탑승할 때 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기다리면서 재홍이한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Lima에서 일을 다 보고 공황에 나와 있다고 알려주는 모양이다. 탑승이 시작되어 우리는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헤어지면서 나를 두 번이나 포옹하면서 못내 섭섭함을 달레 엇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어른거렸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juanitaoct22.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440pixel, 세로 256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7년 02월 08일 오후 0:03

카메라 제조 업체 : SAMSUNG

카메라 모델 : SHV-E500L

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CS3 Windows

F-스톱 : 2.6

노출 시간 : 1/16초

IOS 감도 : 50

색 대표 : sRGB

노출 모드 : 자동

프로그램

그림 1 Juanita가 거주하는 Otterbein 아파트  현관에서 가족과 함께 스냅하고 인사를 하고 떠나왔다. 3:00 pm Oct 22, 2016. at Lima Ohio. 이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이국 땅 낫선 곳이었지만 우리는 한 형제와 같은 우정을 느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우정을 실감하고 감격스런 만남을 체험하게 되었다. 차를 몰고 오면서도 우리는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동하였다. 사실 스티븐이 이야기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 하고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이틀 동안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 아니면 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도 내가 했다. 자녀가 왜 없느냐?  또한 묘지를 지날 때는 만일 주아니타가 돌아가시게 되면 양화진에 모실계획이 있느냐? 등도 물어보았다. 우리는 자식을 갖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으며 괜히 질문했구나! 후회가 되었다. 아직 어머니의 뜻을 확실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느새 10여 년 동안 서신을 교환하면서 또한 한국과 미국을 방문하면서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스티븐 자녀이야기는 한 번도 이야기 하는 것을 못 들었기 때문에 물어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양화진에는 이미 주아니타의 자리가 예약되어 잇기 때문에 나로서는 물어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재홍이와 스티븐 사이에 연락이 되고 금년 초에 우리 어머님이 별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스티븐에게 알리게 되고 Losch 어머니도 8월 달에 돌아가시고 스티븐도 어머님을 좀 더 옆에서 돌보기 위해서 작년에 Lakeside에서 Lima에 데려오게 된 내력을 알 고 있기 때문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픈 상처를 건드리게 된 결과가 되어버렸다.       

                             

=================================================== Oct 22, 2016, Lima



Lima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동안 날씨가 참으로 화창하고 온화하여 편안한 가운데 여행을 할 할 수 있었으며 가을 단풍에 물들은  Lima의 풍경은 그림같이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도 주아니타가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대해준대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으며 이번 여행에는 우리 주님께서 돌보아 주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Lima에서 Chicago로 돌아오는 America Eagle 좌석이 또 창문 옆이라 광활한 오하이오 들판과 구름과 오대호에 저무는 황혼과 구름 밑에 까려있는 마을들을 스냅하면서 한 시간 여만에  Chicago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Dallas에 가는 American Airline 2349편으로 07:54PM에 도착했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해가 저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baggage room에 들어오니 재홍이 내외가 손녀들과 함께 온 식구들이 다 나와 있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재니는 몇 년 전에 애비와 함께 다녀간 일이 있으나 헤진 이와 형지는 10년 만에 보는 것이다. 객지에서 내 혈육을 만나게 보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 재홍이내 집까지 가는데도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무사히 공무를 마치고 자식 집에 돌아오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처람 가족과 함께 식탁에 함께 식사를 하고 편안한 밤을 맞을 수 있었다. 내가 온다고 재홍이는 임시휴가를 냈다고 하면서 다음 날에는 시장에 돌면서 집 수리도구을 구매하는 데 나도 동행하면서 형지가 다니는 중학교와 재니가 다니는 학교 옆을 지나면서 돌아왔다.                                                       Oct 23, 2016 Dallas


재홍이내 집에서 토요일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은 마침 주일이었다. 식구들이 모두 식탁에 앉아 타국에서 잘 이겨내며 자손들도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를 올렸다. 이 식구들이 타국에서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될 것 같다. 오스틴으로 이사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일러야 될 것 같았다. 회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고 식구와 떨어져서 생활하는데 모처럼 애비가 왔으니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재홍이가 월요일 24일 하루는 회사에 안가도록 휴가를 얻은 모양이었다. 아들 집에서 이틀 쉬었으면 귀국해서 할 일도 있음으로 귀국해도 괜찮은 형편이다. 그런데 출국은 26Oct16 12:10PM  KE0032로 되어있다. 그날은 재홍이가 출근해서 오스틴에 있기 때문에 Dallas공항까지는 택시로 가야하며 비용도 100$ 정도 지불해야 한다. 아내와 함께라면 몰라도 나 혼자서 이틀이나 집에서 쉬고 있기 보다는 일찍 귀국하는 편이 낳을 것 같았다. Korean Air에 연락해보니 같은 비행기 편으로 출발일자를 이틀 앞당겨 24일 출발할 수 있었다. 귀국하기 위해 짐을 챙기면서 어제 Corte가 싸준 보따리를 챙기면서 목판에 패널을  펴 보았더니


 A man’s mind planes his way, but the Lord directs his steps.

  Proverbs 16:9  Yun/Shaw 10.22.16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provervs169.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589pixel, 세로 1144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7년 02월 08일 오후 0:26

카메라 제조 업체 : SAMSUNG

카메라 모델 : SHV-E500L

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CS3 Windows

F-스톱 : 2.6

노출 시간 : 1/11초

IOS 감도 : 100

색 대표 : sRGB

노출 모드 : 자동

프로그램

그림 2. Yun/Shaw panel of Proverbs 16:9


 


의 성경귀절이 새겨진 목판판넬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 패널 만들었느냐고 물어봤더니 내가 작년 7월12일 메일에 적어준 선경구절이었다는 것이다. 작년 7월 정부의 초청을 받고 어머님 건강과 메르츠 사태 때문에 한국 방문 초청에 고민하고 있을 때 취소해도 된다고 하면서 내가 적어 보낸 성경구절이 마음에 닿았는지 이를 패널로 만들어서 나에게 준 것이다. 너무 고맙고 감동을 받았다. 나도 이번 Lima 여행은 나 혼자 외로운 여행이었으며 Juanita건강상태도 불안정한 상태이며 나 또한 건강한 편도 아닌데 용케도 날씨도 청명하고 스케줄도 정확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게 한 것을 보면 주님께서 발걸음을 인도해 준 것이란 믿음이 가는 대목이었다. 하여간 선물이 너무 고맙고 의미가 깊은 선물을 받았다고 답장을 해 주었다.


 결국 24일 KE 032편 24Oct 16 12:10 Dallas를 출발해서 14시간 비행하여 25일 17:00pm에 인천에 도착하였다. 공항버스를 타고 대전에 밤늦게 도착하였다. 막내가 터미널에서 차를 갖고 기다리고 있다가 집까지 편안하게 데려다 주었다. 혼자서 어려운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 것이다. 재홍이가 스티븐한테 연락을 했는지 무사히 잘 도착했느냐고 메일이 와 있었다. 집에서 좀 푹 쉬라고 했다. 나도 무사히 잘 도착했으며 덕택에 Lima여행을 잘 마치고 올 수 있었으며 정성어린 선물에 감사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Oct 28,2016, Daejeon


*** 그런데 나는 이글을 정리하는 도중에 주아니타 여사가 Feb.2, 2017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스티븐 판사의 메일을 받았다. 나는 한평생 인고의 생애를 살아오신 여사가 하늘나라에서는 주님의 영접을 받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시도록 우리 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

Feb.10,2017, Daej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