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해양반도국가에 운하가 왜 필요한가?               

                      < 더 이상 엔트로피를 증가시키지 말라>

  

        우리의 자연환경은 이웃나라의 자연환경과 무관할 수 없으며 지구자원도, 지구의 정화능력(NPP,natural production power)도 한정되어 있다. 해마다 이웃나라로부터 황사가 날아와 우리의 산업현장을 위협하고 넓은 바다도 순식간에 기름바다로 변하여 수천 년 지켜온 우리의 삶터가 여지없이 유린당하고  황폐화 되는 현장을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다.

       

        속도와 능률이 최선이었던 지난세기의 번영과 풍요로움이 금세기로 들어오면서 부패와 불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예기치 못할 재난으로 표출되고 이 시대의 역량있는 지도자들도 점점 지도력이 약화되어 전과같이 속도감을 낼 수 없다. 이제 우리도  미래를 보는 새로운 인식과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지금은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지식인들의 理事無碍한 지식전달이 매우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찬반 논의가 여러 매체를 통하여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엇갈린 주장과 불확실한 정보들로 인하여  국민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혹 반대하면 국운 융성의 기회를 방해한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엄포까지 있어 더욱 안타깝다.  

 

       마침 며칠 전 신문에서 ‘환경재앙이 없는 운하도 많다’ 제하의 김귀곤 교수님의 글을 읽었다(조선일보 2008.1.12 A33). 내용인즉 앞서 수경 스님이 주장한 내용(조선일보 2008.1 .7 A35)이 사실성이나 과학성 내지 합리성이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주장한 것이라고 수경스님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었다. 두 분 다 우리사회의 최고의 지성인이며 존경받는 지도자들이다. 이 같은 두 분의 논쟁을 보고 이 시대를 함께 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연과학도의 한사람으로서, 한가지 의견을 보태기로 하였다. 수경 스님이 먼저 청계천사업은 물길을 열어준 順理이지만 대운하는 환경을 파괴하는 逆理라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수경스님이 理判한것을 김교수가 事判한 것이다. 그러면 김교수는 수경스님의 주장을 과연 객관적이며 사실적이며 과학적인 근거에 의하여 사판하였는가?

       

       여기서 필자는 수경스님의 주장을 반박한 김 교수님의 논지가 오히려 객관성이 부족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데 문제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김 교수님은 성공적인 운하의 예를 영국의, 독일의, 뉴욕 주 에리 운하의, 특히 독일의 RMD (Rhine-Main-Danube Canal)운하의 성공사례를 강조하면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운하시스템의 성공사례는 강조하면서도 정작 우리운하의 조건이나 절박한 필요성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안했다. 이로 보아서는 한반도 대운하는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환경문제도 우려할 바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일의 RMD시스템과 우리의 한강-낙동강 시스템의 자연적,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과학적, 기술적 배경과 환경보호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 운하에 대한 필요성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독일은 일직부터 물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舟運이 발달된 이미 운하 활용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인프라와 노하우가 축적된 나라이다. RMD의 라인, 마인, 도나우 강을 연결하는 물길이 4764 km, 유역면적 106만 km^2의 엄청난 물 자원을 갖고 있는 반면, 우리는 낙동강, 한강, 금강을 다 합친 물길은 1420 km, 유역은 6만 km^2 도 채 안되어 유역면적만 보아도 1/18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수자원이 빈약하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독일은 국토가 네덜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폴란드 등 11개국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 한 면이 북해에 연해 있을 뿐이다. 그마저 북쪽 발트해지역에서 대서양으로 나오려면 유트란드 반도가 버티고 있어 덴마크를 한 바퀴 돌아 나와야 함으로 이미 224년전에 킬(Kiel,1784)운하를 뚫어 물길을 열었다. 또 일단 북해에서 대서양으로 나왔다고 해도 중위도 고압권대(북위30°-60°)에서는 연중 강한 편서풍이 불고 있어서 남쪽 대서양으로 나오려면 역풍을 받고 남하해야 한다. 천신만고로 고압권대를 벗어나야만  비로서 북동무역풍의 순풍을 받아 대서양 인도양으로 나가야 하는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흑해로 빠져나가는 도나우강과 연결하여 인도양과 대서양으로 진출해야 하는 국가적 염원이 있다. 이염원은 비록 독일 뿐만 아니라 흑해로 나가는 물길을 열어야 하는 모든 유럽국가들의 공통된 염원이다. 이염원을 전쟁을 많이 치뤄보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독일이 주도적으로 앞장서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마인강으로 연결하는 소위 RMD 운하시스템을 완성하여 유럽사람들의 오랜 숙원을 풀게 한 쾌거였다. 북해에서 흑해로 나오는 큰 물길을 열고 만 것이다. 그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또한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거추장스럽게 다른 나라들과 접해있지도 않기 때문에 한반도의 어느 항구에서도 오대양 육대주로 자유스럽게 나아 갈수 있는 천혜의 해양 반도 국가이다. 또한 부산에서 인천까지는 물론 국내 어느 항구로도 자유스럽게 항해할 수 있는 연안항로가 이미 개설되어 있다. 다만 지금 이용을 잘 안하고 있을 뿐이며 국토가 분단되어 한강을 통하여 서울까지 배가 들어오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다. 북한을 잘 설득하면 한강물길을 열수도 있는데 유장한 물길이 옆에서 흐르고 있는데도 고집스럽게 경인운하를 파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갑기 그지없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혜롭게 이용할 생각보다는 저돌적인 돌관작업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산-인천간 바닷길 752 km를 연안 선박은 28 시간이면 도착하는데 산 넘고 물 건너 한반도 대운하길 553 km를 60시간에 도착한다. 우리는 바다로 육지로 하늘로 열릴 것은 다 열려있는데, 구태여 엄청난 재화와 국력을 소비하고 수려한 금수강산의 심장부를 초토화하면서 오랜세월 우리민족이 간직한 정서와 문화도 무시한 채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강행하려는 지도자의 큰 뜻을 알 수가 없다. 이러한 모든 부담과 희생을 보상하고도 남을 經世之策을 깨닿지 못하는 무지를 탓할 수밖에 없다.

 

        만일 독일이 우리와 같이 삼면이 바다이고 아름다운 명산들을 끼고 있는 반도 국가이며 사행천 우각호로 꾸불꾸불 한 물길을 갖는 하상계수가 터무니 없이 높은 강들만 있다면 막대한 재화와 국력을 소모하면서 RMD시스템을 강행했을까? 또한 우리 조상들은 큰 강의 발원지를 신령스럽게 여기고 성역화하여 함부로 범접하지 않으며, 산허리를 자르거나 국토정맥을 끊는 일들을 금기해 왔던 민족이 아니었던가? 김교수님은 다른 나라 운하의 성공사례에 앞서 우리 운하의 절박한 필요성을 먼저 명시했어야 했다.

 

        둘째, 운하에 따르는 환경재해의 발생을 반박하기 위해서 김 교수는 일본의 한 영화를 거론하면서 그 영화에 나올 정도의 환경재앙은 문헌에서 발견할 수 없는데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하면서 수경스님의 우려를 일축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픽션일 텐데 픽션의 내용을 기록에서 찾는다는 것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2005년 8월 29일 역사상 4번째 큰 재앙으로 기록된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슈퍼 태풍 참화도, 만일 습지를 지나는 두 운하 MRGO와 GIWW가 없고 대신 본래대로 습지가 있었다면 4.7 m 해일의 높이를 최소한 1.3 m는 낮출 수 있었고 제방도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리포트가 있다. 이는 1884년 뉴올리언스가 개발된지 121년만에 닥친 재앙이었다. 또 금세기의 자랑거리로 우리의 새만금이 벤치마킹 했던 네덜란드의 주디치(Zuiderzee) 방조제도 1932년 완성하여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지만 1953년 폭풍우를 동반한 거대한 해일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1916년 Zuiderzee 방조제를 건설당시 국가의 부름을 받은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로렌츠가 수치해석적 수리역학을 새로히 개발하면서 까지 심혈을 기울여 계산한 결과는 15cm - 4 m의 파고를 흡수해내면 안전한 것으로 확정짓고 설계한 것이었다. 그런데 1953년 1월 31일 높이 5.6m의 성난 파도가 범람하여 전국토의 9%가 물에 잠기고 1835명이 참변을 당하는 국가적 재앙을 당하고 만것이다. 가장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주디치 방조제가 밀려오는 바다물을 막지 못하면서 폭우로 잠긴 내륙의 물을 바다로 내보내지도 못함으로 참혹한 국가적 재앙을 부르게 된것이었다. 지금은 해수문을 열고 간척지의 56%를 역간척 사업으로 다시 갯벌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전문가이신 김교수님도 잘 알고 계실 터 인데 이런 사실들은 다 외면해 버리고 영화내용을 내세워 강변하는 것은 동문서답에 불과하다. 이러한 김 교수님이 수경 스님이 대운하를 만드는 것은 順理가 아니고 逆理 라고 한 것을 비과학적이고 사실성이 없다고 반박한 것은 적반하장이다.

       

       오히려 수경스님의 逆理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다. 새들도 넘기 힘든 새재(鳥嶺)를 거대한 바지선이 숨가쁘게 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정서는 혼란스러워지고, 골짜기의 물을 높은산 정상까지 다시 올리는 것은 역학적 에너지보존법칙에 역행하는 일이다. 이런일들을 위해 막대한 재화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엔트로피 증가법칙을 거역하는 일이다. 강바닥을 긁어 바닥에 있는 모래를 채취해 버림으로 물고기들의 산란장소를 말살시키고 물속의 수생식물이나 식물성 플랑크톤이 생존할 수 없게 함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시킴으로서 강으로 유입되는 유기체를 분해하지 못하면 강물은 정화능력을 잃고 죽은 강이 되어 버린다. 자연계의 순환 질서를 파괴하고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이런 모든 행위는 전부 逆理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일이다. 이익창출과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지구의 자원을 쓸 때 마다 엔트로피는 어김없이 증가되고 에너지 효용도는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 냉엄한 자연법칙이다.  이것이 자연의 비가역적 방향성이다. 자연과학도라면 다 알고 있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이 엔트로피가 최고치에 달한 상태가 열 죽음(heat death), 즉 문명의 종말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최대과제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일을 가능하면 절제하는 일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엔트로피 법칙이 모든 과학의 첫째 법칙'이라고 선언했으며, 프레데릭 소디(1921,노벨화학상)는 ‘엔트로피 법칙은 정치체제의 흥망성쇠, 국가의 자유 내지 속박, 산업의 발달, 부와 빈곤의 발생, 그리고 인류의 복지 문제등 모든 것을 지배한다‘ 고 분명히 지적하였다. 미래사회를 열어 나갈 지도자라면 이 법칙이 주는 경고를 반드시 인식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지난 세기말에  21세기 문명의 기본 패러다임은 바로 이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리프켄이 경고하지 안했던가!

 

        우리의 역사는 5천년이 채 못되지만 한반도가 생성된 것은 적어도 20억년도 더 오래다. 그런데 이 강토의 산과 바다는 그동안 잘 보존되어 왔으나 우리 세대에 와서 너무 많이 개발되고 조작되었다. 산과 바다 강과 골짜기 어디 한군데 상처 아닌곳이 없다. 청계천도 우리세대가 건설 해놓고 우리세대가 다시 복원했다. 다음 세대가 또 어떻게 처치할지 모른다. 자연을 조작할때 마다 빔(empty 虛)은 줄어들고 구속은 늘어나면서 쾌적함은 상실되고 만다. 우리 강토는 항상 쾌적함을 유지하고(不屈), 생명력이 넘쳐나는(愈出) 축복의 땅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도덕경에 虛而不屈 動而愈出 이라고 했다. 이것을  바로 노자 버전의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말해도 좋다. 옛 사람들이 한 얘기라고 무조건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안된다.

  

윤희중 (목원대 명예교수) heejy@mok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