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해밀톤 쇼 추모공원 발기인 대회를 마치고 나서


지난달 9월22일 오후 3시 서울 응암어린이 공원에서 개최된 윌리엄 해밀턴 쇼(한국명 서위렴)대위 추모공원 발기인 대회에 참석하였다. 마침 이요한 총장이 추모사를 하고 나는 추모공원 건립추진 위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대학에서는 총장님을 비롯하여 안승병 교목실장, 김흥수 교수와 김용현 과장 등이 참석하여 추모사업에 대한 대학의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서위렴대위의 고귀한 한국사랑과 희생이 햇빛을 보고 평화 자유 애호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한미 해군을 비롯한 군 관계 인사와 이북도민회, 각급학교 관계자 및 교회지도자등 500여명의 시민이 참석하여 서위렴 대위의 짧지만 감동적인 삶을 되돌아보는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추모공원 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박세직 재향군인회 회장, 이성호 제5대 해군참모총장, 노재동 은평구청장을 공동추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이날 행사를 진행하였다. 공동추진 위원장인 노재동 구청장이 추모공원 건립배경을 설명하면서 내빈들을 소개하였으며 박세직 위원장, 20대 해군참모총장 안병태 대장, 미 해군 James Tranoris 중령, 목원대 이요한 총장이 추모사를 했으며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축도를 했다. 행사추진과정에서 미국에 있는 쇼대위 가족과의 연락과 자료협조를 해서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노재동 구청장과 안병태 총장이 추모사 도중에 본인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감사한다고 하였다.


          

            



추모행사에는 서위렴 대위가 미 해군을 제대하고 한국에 돌아와 한국해안경비대와 해사교관으로 복무하면서 사실상 한국해군의 산파역할을 한 공로가 재평가되고 그 자신 훈훈한 인간적 향기를 나타내었던 잊을 수 없었던 이방인으로 각인되었던 기억을 더듬어 많은 역전의 해군 용사들이 참석하였는데 특히 역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장군들이 노령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참석하여 헌화함으로서 참석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였다. 해군 제5대 참모총장 이성호 제독을 비롯하여 제7대 함명수 제독, 제8대 김영관 제독, 제19대 김홍렬 제독, 제20대 안병태 제독, 제25대 남해일 제독과 해병대 사령관 공정식 장군도 참석하였다. 해군에서는 해군 본부 군악대를 직접 파송하여 행사일정을 도왔으며 역전의 해군. 해병들은 거리마다 배치되어 행사안내와 안전을 돕고 있었다.


특히 공동추진위원장인 이성호 장군은 서위렴대위와 함께 해사교관을 했던 동료로서 1950년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하여 서위렴대위를 만나자 ‘ 자네는 이미 미 해군에서 제대한 사람이 여기는 왜 또 왔는가? 했더니 “한국은 제2의 고국인데 모른 채하고 공부만 하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분은 해군참모 총장을 역임하셨고 퇴역 후 에는 석유공사 사장으로 있었는데 현재의 노재동 청장이 석유공사에서 상사로 모셨던 분이었다. 그 후 이성호 총장은 은평구에 있는 서위렴 대위 전사비가 어린이 놀이터 구석에 박혀 있으니 햇빛을 볼 수 있게 추모공원을 세우는 일을 강력하게 요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금년 5월 은평구에서는 안병태 장군을 비롯한 역대 해군참모총장등 11인의 장군들이 서명한 건의문을 받아들이면서 사업계획을 구체화하여 서울시의  허가를 받음으로서 이번에 발기인대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 추진과정에서 본인이 은평구와 해군동지회 중앙회 최종식 회장을 통하여 서위렴대위에 관한 자료수집에 협력하게 되었다. 자료라고 해도 우리 대학교회에서 제작한 수련회 교재 내용이 전부다. 이번행사를 전후하여 많은 내외신 보도와 인터넷 사이트에서 우리교회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활용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여러분들의 노력과 협력으로 서위렴대위 추모공원 추진사업이 본 괘도에 올라오게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서위렴 대위의 위대한 신앙적 유산위에 세워진 우리대학교회의 위상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앞서게 된다. 추모공원은 은평구 녹번동 153-1호에 백련 산을 바라보는 6호선 전철 역촌역 바로 앞에 부지 5700m2 에 사업비 420억을 투입하여 2010년 6월 현충일을 기하여 완공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부지의 대부분이 시 소유이지만 공원을 이루기 위하여 추가로 매입할 토지 보상비가 320억이고 100억이 건설비로 책정되어 있다. 추모공원 건축비가 이처럼 엄청나지만 노재동 구청장은 서위렴 대위의 값진 희생은 값비싼 대가를 치룰만한 가치가 있다고 Stars & Sripes지와의 회견에서 밝히고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보여준 위대한 애국심과 도덕적 용기는 우리가 반드시 계승 보존해야 할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라고 말하면서 프랑스 ’깔레의 시민‘과 걸맞는 기념물로 건설해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세직 공동추진 위원장도 추모사에서 우리는 그에게 빚진 자이며 그 동안 너무나 무심한 채로 지나왔다고 술회하면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우리선열과 서위렴 대위와 같은 우방국 군인들의 덕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요한 총장도 서위렴대위의 위대한 신앙이 목원대학을 일으켜 세운 건학이념이었으며 목원대학도 이에 병행하여 서위렴대위 추모사업을 동시에 펼쳐 나갈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이번 추모행사가 다시 한번 우리의 자유수호 의지를 밝히고 참된 그리스도의 신앙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1956년 9월 22일 녹번리 삼거리에 세워진 서위렴 대위 전사비 기념비 제막식 광경을 대한뉴스 제 91호로 전 국민에게 방영된 뉴스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은평구에서는 행사를 앞두고 2주전에 미국에 있는 쇼가족을 초청하겠다고 해서 나에게 가족의 연락처를 물어 온 적이 있었으며 서위렴 대위의 사진이 있으면 보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다. 가족이 국내에 계신 것도 아니고 외국에 거주하고 있음으로 초청의사가 있었으면 충분한 시간여유를 두고 초청했어야 했었는데 너무나 촉박하게 진행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주아니타 여사는 이제 90에 가까운 노령인데다 장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건강상태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아드님인 스테펀 판사도 공무원으로서 곧 바로 한국의 행사장에 참여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추진위원회의 한사람으로서 내가 아는 한 도와야 할 의무가 있음으로 쇼 가족 연락처를 알려드리고 9월 12일 메일을 보내 스테펀 씨에게 추진위원회에서 쇼가족을 추모행사에 초청하고자 하여 내가 아는데로 연락처를 알려드렸다고 전했다.


그런데 9월 18일 메일로 소식을 전해 오기를 이번 행사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꼭 한국에 방문하여 자기가 출생한 곳과 대학교회를 꼭 방문하겠다고 전해 왔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 어머니와 자기와 서위렴의 다섯 손자들은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공원을 건설하려는 준비위원님들과 모든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자기 가족을 영예롭게 하려는 모든 노력에 대해서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편지로 보내왔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녹번리 전투에서 자기 아버지만 전사한 것이 아니라 쓰러진 자기아버지를 구조해내다가 브라질 하사가 전사하고 또 다른 세 명의 해병대가 중상을 입었는데 (대학교회 2007년도 수련회 교재 참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그들의 희생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였다. 이러한 쇼 가족의 진정성이 추모공원 사업 추진위원회에 정확하게 전달되고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나는 메일 복사 본을 갖고 마침 추모사를 한 안병태 장군과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많은 내외귀빈과 함께 공원 건립현장 시찰차 대부분의 추진멤버들이 이동하는 관계로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였으나 추진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쇼대위와 해사 교관생활을 같이 하셨다는 이성호 제독과 안병태 제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 1946년 미군정시 해안경비대(해군의 전신)에서 같이 근무했던 옛 전우이신 김광식님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기념비의 좌대를 기증한 해사2기생인 이완용 제자를 식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날은 마침 서울시에서 차 없는 날로 정한 날이어서 전철을 타고 식장에 가고 오고했는데 마침 한 노신사는 같은 전철 같은 칸에 자리를 같이했는데 추모식장에서 같은 자리에 또 앉게 되었다. 그 분은 인천상륙작전 일주일전에 미리 침투한 켈로부대 대원이었던 박의정 선생이었다. 오늘은 이 땅에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걸고 피 흘린 의로운 대한민국의 진정한 사나이들만 만나는 날이었다.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풍요로운 들판을 바라보면서 빌 쇼가 즐겨 암송했다는 구절을 생각해 본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지금은 그대가 뿌린 의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 하시어 ‘윌리엄 해밀턴 쇼 추모공원’이 아름답게 완성되어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전 세계 평화애호국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되는 역사의 현장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고대한다.


 

 

 

2008년 9월 22일
 윌리엄해밀턴 쇼대위 기념공원 추진  위원회

발기인 윤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