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Shaw)가족의 목원사랑

   5월 26일 오후 인천공항 국제선 도착 장에서 우리는 디트로이트에서 델타항공으로 입국하는 스티븐 쇼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군동지회 최종식 회장과 나 그리고 해군 영접관 일행은 해군참모총장 부인이 준비한 꽃다발을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는 이미 2시 55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고 전광판에 안내되었고 곧이어 승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고 네 시가 가까워져도 스티븐 쇼 부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니 우리는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나와 최 회장은 2010년 6월 17일 스티븐 쇼 부부가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시카고 공항에 나오는 도중에 갑작스런 건강문제로 한국방문을 취소하고  쇼 가족 4명만 한국에 오고 정작 스티븐 쇼  부부는 오지 못했던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도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고 오는 쇼 가족을 스티븐과 연락을 취하면서 일정을 조정하는 일을 도왔는데 정작 스티븐 쇼 부부는 오지 못했다가 2년이 지난 지금 건강이 회복되어 오늘 한국 방문이 이루어 져서 이렇게 마중 나온 것이다. 무사히 도착하여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순간이었다. 스티븐 쇼 부부가 카트를 밀고 입국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들 생전 초면이었지만 서로를 금방 알아보고 서로를 부둥켜 않고 반가워했다. 안도의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겹쳐지고 있었다. 마중 나온 인사들은 서로들 자신들을 소개하고 꽃다발을 안겨주고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쇼 가족의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해군 장병들은 우리 일행을 편안히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 데려다 주고 또 나는 서울역 까지 데려다 주었다. 스티븐 쇼는 45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는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 쇼가 건강을 회복하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는지 2011년에는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연초에 메일을 보내왔는데 2011년이 다 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가 금년 3월 9일 5.26-6.4 일정으로 부인과 함께 한국 방문 일정이 잡혔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부탁이 있는데 금번 여행은 개인적인 여행이기 때문에 일체의 환영행사나 이벤트 같은 것은 없었으면 한다고 메일에 썼다. 그러나 꼭 인사를 드려야 할 몇 사람과는 연락을 하였다고 했다. 나는 무사히 대학교회 예배에 참석하도록 주선해 주는 일만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번의 한국방문은 원래는 서울 외국인 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이벤트에 맞추어 한국 방문이 이루어 진 것이었다. 그래서 외국인 학교 행사일정에 맞춘  5.26-6.4일 기간 중에서 5월 30일은 양화진과 은평구 평화공원 참배를 위해 하루 일정을 잡아놓았으며, 목원대학 교회는 6월2일이나 3일에 방문하려고 한다고 알려왔다. 그러면 2일 날 와서 하루 묶고 3일 날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일정은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KTX로 가면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도 충분할 것 같으니 주일 날 아침에 출발하여 예배보고 난 다음 오후에 다시 KTX로 올라와서 다음날 출국하겠다고 하였다.


그림 1) 스티븐 쇼 부부의 인천공항 도착 (2012.5.26)


  2008년부터 부친 동상 건립을 추진해온 전 은평구청장 노재동씨와 추진위원들에게는 인사드리겠다고 해서 그분들에게 스티븐 쇼의 한국방문 소식을 알려 주었더니 안병태 전 총장님이 직접 나한테 전화를 걸어오시더니 아무리 개인적으로 오신다고 해도 우리가 추모공원까지 세워서 받들고 있는 국가유공자의 가족을 그냥 방관하고 있으면 나라의 체면도 아니고 국민의 도리도 아니다.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오지 못했던 분이기 때문에 더욱 더 각별히 대접해야 한다며 그분의 방문일정을 정확히 알려 달라고 해서 알려 주게 되었다. 5월 10일 해군본부 총장 비서실에서 나한테 직접 연락오기를 그 분들의 한국방문 일정동안에 해군에서 안내장교와 사진사를 동반시키고 방문기간에는 모든 차량지원을 해 주라는 참모총장님의 지시가 내려졌으며 30일 저녁에 스티븐 쇼 가족의 한국방문을 환영하는 만찬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니 스티븐 쇼에게 연락을 좀 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스티븐 쇼는 물론 영광스러운 초대라고 흔쾌히 승낙하였다. 스티븐 쇼는 우리부부와 함께 친구 Roush 부부도 함께 한국 방문을 하기로 했으니 그 친구내외도 같이 초청해 줄 수 없느냐고 물어달라고 해서 또 그 사정을 해군본부에 알려 주었더니 그 Roush 일행도 스티븐 쇼  가족과 똑 같이 초정한다고 알려왔다. 해군에서는 이미 스티븐 쇼 일행을 영접하기 위한 부서가 조직되었던 것이다. 그 분들은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나를 미국에 있는 스티븐 쇼와의 연락책임자라고 내정해 놓고 있어서 쇼 가족과의 연락은 전적으로 나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30일 해군호텔에서 거행된 환영만찬회에 스티븐 쇼와  Roush부부와 함께 나도 덩달아 초대 받게 되었다.


 생존해 계신 역대 참모총장님과 해군 최고지도자들과 해군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홍은혜 여사도 초청되었다. 만찬은 최대의 예우로 진행되었으며 모든 참석자의 이야기는 통역관에 의해 즉시 통역되었다. 스티븐 씨의 인사말도 정중히 소개되었으며 스티븐 씨가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 바람에 나도 인사말을 하게 되였다. 스티븐 씨는 2010년에 내가 쓴 책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윌리엄 해밀턴 쇼“를 스티븐과 내가 함께 서명하여 만찬 참석자 전원에게 기증하면서 최윤희 참모총장에게 대표로 책을 기증하였다.


이성호 제독과 공정식 해병대 사령관은 1947년 진해해군사관학교에서 같이 교관을 했던 전우였기 때문에 쇼 대위의 교관생활 이야기로 만찬은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 되었다. 이분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공원이 건립되었던 것이다. 특히 공정식 사령관은 내가 해병대 복무당시 사령관님 이었는데 49년 만에 만찬장에서 만나뵙게 되었다. 그의 부하였던 전우가 쇼 가족을 돕는데 한 몫을 했다는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으며 떠나올 때 내 주소를 물어오더니 존경하는 해병대 전우라고 친필 서명까지 해서 회고록을 보내왔다. 친구 때문에 현역때 사령관님을 만나고 또한 격려까지 받게 되었다.


  손원일 제독(1980작고)은 대한민국 해군창설자로서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그의 미망인 홍은혜 여사는 책을 읽고 너무나 생생한 감동을 받았다면서 손수 나한테 전화를 걸어와서 격려해주엇으며 내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 주었더니 격려편지와 함께 손정도 목사와 손원일 제독, 또 홍여사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역사 자료를 보내왔었다. 해밀턴 쇼 대위가 인천상륙작전시 당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을 위해 맥아더 장군에서 유창하게 한국말과 영어로 통역을 해 주었다고 술회했다. 손재독 가족과 쇼 가족이 서울에 있을 때 각별하게 지냈는데 어머니(Juanita R. Shaw)와  형수님(Carole Cameron Shaw)이 이번에 서울에 가면 그 가족을 꼭 한번 만나보도록 부탁했는데 최종식회장이 5월 26일 날 같이 공항 갔다 오면서 스티븐과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참모총장에게 이야기해서 홍여사를 모셔오게 했던 것이다. 그 홍여사가 지은 해군가 [바다로 가자]는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 로 끝나는 해군가가 바로 손원일 작사 홍은혜 작곡 [바다로 나가자]다. 지금도 우리 해군들이 즐겨 부르는 군가다. 해군 해병대 갔다 온 국민들은 이 한 구절만 들어도 젊은 피가 용솟음치는 노래다. 홍은혜 여사는 이은상 작사 해군사관학교 교가도 작곡하셨다.


해군에서는 본래 스티븐 쇼 일행이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방문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일정상 부득이하면 해군의 헬리콥터까지 동원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해군에서 스티븐 쇼 일행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게 됨으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지만 무리한 일정은 스티븐 쇼의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가능한 한 절제해야 되는 걱정도 뒤 따르게 되었다. 나야 공식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입장이지만 스스로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림 2) 스티븐 쇼 부부를 친 가족처럼 반가워 하는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여사   (2012.5.29 해군호텔)


 


해군에서는 5월 31일 진해 사관학교에 갈수 없느냐고 했다. 그런데 31일은

서울외국인 학교(Seoul Foreign School)에서 DMZ방문 계획이 있으며 특히 친구도 역사학자로 한국에 가서 DMZ방문을 취소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해군에서는 일정을 조정해 보려고 알아본 결과 그 계획은 1년 전부터 외국인 학교에서 계획된 것이라 곤란하다고 SFS에서 응답해 온 것이다. 그런데 마침 참모총장이 공적인 일정 때문에 30일 만찬을 29일로 바꾸어야 할 형편이 생겨 다시 또 스티븐 쇼와 상의한 결과 29일 저녁이면 외국인 학교행사와 겹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해서 29일로 일정을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29일 만찬장에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가운데 안병태 제독이 해군사관 학교도 안 가보면 돌아가서 어머니한테 뭐라고 할 거냐? 하면서 공개적으로 해군에서 모든 것을 주선해 주면 갈수 잇느냐 하니까 스티븐 쇼는 분위기가 거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혼자 가기는 뭐 하니 윤 교수님하고 같이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비서관이 나한테 와서 같이 갈수 있느냐고 해서 스티븐 씨가 6월 2일 날 간다면 나도 같이 갈수 있다고 나도 대답해버렸다. 그 대신 나는 대전에서 합류하겠다고 해서 진해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면서 3일 목원대학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대전 스파스텔에서 6월 2일 밤을 자고 6월 3일 아침에 대학교회에 방문하기로 일정이 수정되었다. 이렇게 되니 어떤 이벤트도 하지 않기로 했던 스티븐 쇼 의 애당초 일정은 빡빡하게 짜여지고 말았다. 나는 대학교회 방문일정이 잘 마무리 될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그림 3) 스티븐 쇼 부부가 대학교회 아침 예배 참석후 목원가족에게

           쇼 가족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2012.6.3)

 


 스티븐 쇼 부부와 Roush 부부는 6월3일 주일 예배에 우리 교인들과 함께 뜻 깊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예배는 쇼 가족에게나 우리 목원가족에게 참으로 의미 잇는 예배가 되었다. 이 교회는 현관에 쓰인 데로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 교회’다. 오늘의 설교는 쇼 선교사의 제자인 이군호 목사님이 요한복음 15장 13-14절로 직접 설교를 하셨다. 목원대학교 김원배 총장은 그의 아들 스티븐 쇼에게 명예 목원가족 증서를 수여했다. 스티븐 쇼에게는 남 다른 감회가 있다. 생후 11개월의 스티븐 쇼는 메사츄세스 이스트 브랜트리에서 아버지 해밀턴 쇼를 마지막 보았다. 그 후 팔 년 후 여덟 살 때 목산언덕에 새워진 아버지 기념교회 헌당식에 참여했다. 그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형 윌리엄과 함께 했다. 이제는 부인 코르테와 그의 오랜 친구인 Roush부부와 함께 이 예배에 참석한다. 반세기도 지나 55년 만에 그의 아버지 기념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된다. 벌써 2년 전에 참석할 수도 있었는데 어려운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오늘에 와서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으며 대학교회 교인을 포함한 모든 목원가족에게 쇼 가족의 격별한 목원가족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싶어 했는데 오늘 아침 전 목원가족을 위한 그와 쇼 가족의 사랑을 피력할 수 있는 시간을 특별히 우리 김홍관 목사님이 마련한 것이다. 쇼 가족의 바램은 한국이 민주적으로 통일이 되어 자기 아버지가 태어난 평양에 갈 수 있게 되는 날이 하루 빨리 돌아오는 것이라 했다.

 

그림 4) 1957년 부활절 윌리엄해밀턴 쇼 기념채플 봉헌식에 참가한

            쇼 가족.  뒷줄 의자 왼쪽으로부터 에드린, 제임스,주아니타, 스티븐. 

 

그림 5) 55만에 목원채플 예배에 참석한 스티븐 쇼.

        부인 코르테 뒷자석에는 친구 로쉬 부부(2012.6.3)


그림 6) 대학교회 뜰에 세워진 윌리엄 해밀턴 쇼 전사기념비

           (녹번리 전사비를 복제) 앞에선 쇼 가족과 목원가족(2012.6.3)



 스티브는 6월 5일 인천공항에서 나의 손을 지긋이 감싸면서 우리는 친구라고 조용히 속삭이고나서 손을 흔들며 출국장를 빠져 나갔다. 이제는 한국방문의 감격을 가라앉히고 오하이오 주 법원 부장 판사의 위치로 돌아가 업무에 복귀하였으며 자기 가족을 위해 수고해준 모든 한국 친구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감사의 편지를 보낼 한국 친구들의 주소를 좀 알아서 보내달라고 친구들의 이름들을 나열해서 보내왔다. 나는 지난 한 주일 짧은 시간동안에 한 세기를 넘나드는 숨가뿐 시간과 시차가 몇 번도 더 변하는 공간과 언어와 풍습과 짧은 혀와 무딘 청력을 극복하면서도 친구와 전우와 가족의 사랑을 몸으로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더 큰 사랑‘을 몸소 목숨으로 증거했던 위대한 쇼 가족의 사랑이 이 목원동산에서 우리와 함께 했다는 것은 우리 목원가족에게는 귀중한 신앙적 자산이 되고 있음을 이 번 쇼 가족의  목원방문을 계기로 더욱 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번 스티븐 씨 부부의 한국방문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데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다’ (요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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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6.25

  dongree write